번역이랑 별로 관계 없는 글

내가 밀리시타 번역을 하는 이야기

라인슬링 2020. 4. 14. 00:04

그냥 썸네일이 귀여워지라고 넣은 로코이다




나는 일본어로 적힌 밀리시타 게임 내 스토리 번역을 하고 있는 아마추어 번역쟁이다.

 

전공도 일본어가 아니긴(나는 수학과를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체계적으로 배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구몬 일본어를 고3이 될 때까지 8년간 하면서 마지막 단계까지 완주했다. 당시 구몬 선생님에 의하면, 일본어 마지막 단계를 끝낸 사람은 강동구 지부에서 최초라고 했다. 그와 함께 구몬 한자도 8년간 했기 때문에 한자도 나름대로 읽을 줄 아는 편이다. 그렇게 쌓은 일본어 실력이 꾸준히 유지되었던 이유는 역시 일본어를 일상적으로 읽고 듣는 오타쿠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구몬 일본어를 통해 문법 단계에서부터 기초를 제대로 다져 놓았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행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꾸준히 일본어 번역에 관심이 있었다. 당연히 덕질의 일환이었다. 블로깅을 하며 노래 가사를 번역하거나, 아마추어 소설 업로드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소설 번역을 하기도 했고, 게임 시나리오나 2차 창작 만화 번역 등등 생각보다 많이 건드려 봤다.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밀리시타로 입문 한 이후 아이돌 마스터 밀리언 라이브에 푹 빠져있고, 블로그를 열어서 밀리시타 관련 커뮤들을 번역을 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밀리시타 관련 번역을 하면서 주의하는 점, 신경쓰는 점 등등 번역에 관해 정해둔 원칙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내 번역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는 편이다. 아마추어 번역이라 가능한 특권이라 생각한다. 가능하면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을 하자는게 일차적인 목표지만, 때로는 오타쿠의 본색을 드러내며 일본어 표현을 그냥 가져다 쓰는데도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곡명이나 캐릭터 말투 등 고유명사나 그에 가까운 것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온 번역을 따르기로 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내 마음대로 번역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프린세스니까' 라는 곡 제목 번역이 있다. 'だってあなたはプリンセス'라는 제목의 곡인데, 대개는 '왜냐면 당신은 프린세스'라고 쓰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이게 만약 기존에 밀리언 라이브에 있던 곡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번역을 따랐다면 나도 그렇게 적었겠지만 이 곡은 내가 번역 할 당시에 밀리시타에서 처음 공개된 신곡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써 온 표현' 따윈 없었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 번역했다. '왜냐면 당신은 프린세스'보다는 '당신은 프린세스니까'라는 표현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외에도 번역을 하며 몇 가지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정리를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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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さん (~) 은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다양하게 번역한다.

 

대개는 ‘~로 많이 번역되는 표현이다. 하지만 나는 미성년자 아이돌끼리 서로 ‘~라고 부르는게 너무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 아이돌끼리 서로 호칭을 할 때는 연상에게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니로 번역하는 편이다. 코노미상은 코노미 언니로 번역하는식. 연하 혹은 동갑에게 ‘~을 붙이는 경우는 과감히 생략.

 

물론 ‘~라고 쓰는 경우가 없는건 아니다. 성인들 사이의 대화나 프로듀서가 말 할때가 그렇다. 프로듀서가 존대말을 쓰는 아이돌은 아즈사, 치즈루, 코노미, 카오리로 네 명 있는데, P가 이들을 부를 때 쓰는 표현에는 ‘~를 살린다. 미사키나 코토리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한편 이걸 ‘~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건 역시프로듀서상의 번역. 이 쪽은 예외없이프로듀서님으로 번역했다. 그 외에는 사장님, 편집자님 등 직책명에 ‘~이 붙은 경우는 대부분 ‘~으로 번역했다.

 

조금 아쉬운게 몇 가지 있다. 우선 미즈키의 말투인데. 미즈키는 예외없이 모든 아이돌에게 ‘~을 붙여서 부른다.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없고 대부분 성에 붙이는 편. 미즈키는 정말 특이한 케이스에 속하기 때문에 미즈키의 대사에 한해서 그냥 ‘~를 살리는것도 나쁘지 않았던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번역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언니표현도 아쉬운 것 중 하나이다. 나는 연상을 향해 표현하는 ‘~을 전부 ‘~언니로 번역했는데, 평상시에는 별 상관 없지만 일본어로 언니를 뜻하는오네상이나오네쨩표현이 등장했을 때 ‘~표현과는 다른 그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살리지 못하는게 아쉽다. 예를 들면 리오가 코노미를 부를때 쓰는코노미네상은 다른 캐릭터들이 전부 코노미를코노미상이라고 부를 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는데, 번역해두면 전부 다 똑같이코노미 언니라고 적히는 것이 좀 아쉬운 정도.

 

 

 

 

2 ~ちゃん(~) 은 대부분 생략한다.

 

일본어에서 사람 이름 뒤에 붙이는 애칭 표현 중 가장 유명한게 아닐까 싶다. ‘~을 붙이는 표현 역시 나는 기본적으로 생략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표현에 비해서 좀 고민을 덜 하게 만든 것 같다. 우선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거나 때론 생략했던 ‘~표현과 달리 ‘~은 일괄적으로 생략해도 어색해지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예외는 있다. 가장 대표적인건 아카네의 경우다. 아카네가 프로듀서를 부르는 호칭은프로쨩이고 아카네가 본인을 부를 때 쓰는 1인칭은아카네쨩인데, 이건 아카네만의 독특한 말투이기 때문에 그대로 살렸다. 하지만 아카네가 다른 캐릭터를 부를 때 붙이는 ‘~은 마찬가지로 생략.

 

‘~표현을 살려두는 경우는 더 있다. 츠바사가 미키를 부를 때 쓰는미키쨩이 그렇다. 특히 츠바사가 미키를 부를때 쓰는미키쨩이라는 호칭은 같은 시어터의 동료나 선배이기 전에 아이돌 미키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쓰는 경우가 많다는 뉘앙스가 들어서 (거의 뇌피셜이다) 그대로 살려뒀다. 어차피 츠바사 2차 메인 커뮤 이후부터 츠바사는 미키를미키 선배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별로 고민 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미키쨩에서미키 선배로 바뀐 호칭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위와 거의 유사한 케이스로 아리사가 쓰는 ‘~표현이 있다. 아리사 역시 처음에는 그냥 ‘~을 생략해 썼었는데, 츠바사가 미키를 부를 때 쓰는미키쨩을 살려두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동료 아이돌을 열렬한 팬심으로 바라보는 아리사의 시선도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리사가 쓰는 ‘~표현도 전부 생략하지 않고 남겨둔다.

 

 

 

 

3 쉼표는 거의 생략한다.

 

일본어 문장에는 띄어쓰기가 없는 대신 중간 중간에 쉼표가 들어가곤 한다. 그 쉼표를 문장에 전부 다 살려서 번역을 하면 어색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생략하는 편이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안나, 카렌처럼 말이 느린 캐릭터들은 일부러 문장 속의 쉼표를 전부 다 살리면서 번역한다.

 

 

 

 

4 영어 표현은 때로는 적절한 다른 단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스테이지일 것이다. ‘스테이지라고 적혀 있어도 나는 대부분무대라고 번역해 썼다. 그 외에도 일본어 표현에서 종종 등장하는 영어 단어 표현을 다른 한국어 단어로 바꿔 표현 할 때가 많다. 쇼크충격, 프레셔부담 등등. 예외적으로시어터만 그대로 적는다. 게임 제목에까지 들어가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고유명사에 가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에 따라서는 '시어터' 대신 '극장'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이다.

 

물론 영어 표현을 전부 다 살려서 적는 경우도 있다. 로코가 말 하는 대사가 그런데, 로코의 대사 중에서 영어 대사 표현이 들어가면 전부 그대로 넣는다. 말투를 로코나이즈 하는 것 역시 로코아트에 머스트 이센셜한 익스프레션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5 캐릭터의 고유한 말투는 가능하면 살리려고 한다.

 

위에서 말 했던 원칙에 대한 예시들 외에도 밀리언 라이브에는 말투가 독특한 캐릭터들이 많다. 예를 들면 ‘~나노데스식의 말투를 사용하는 마츠리, ‘~나노를 쓰는 미키, ‘~을 종종 사용하는 아카네, '~다제'로 끝나는 스바루 등이 있다.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는 하지만 한국어 번역으로 그 특색이 살아나지 않을 때도 많아서 아쉽다.

 

특히 아카네의 고양이 말투. 일단 한국에서 고양이는하고 울지 않는다. ‘야옹하고 울지. 그래서 그걸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다. 어려워서 그렇지.

 

사투리 번역도 골치가 아픈데, 나오와 히나타가 그렇다. 나오가 쓰는 간사이벤은 대개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을 하는데 내가 경상도 사투리를 잘 몰라서 매번 문장이 어색해지곤 한다. 이 점은 양해해줬으면 한다. 히나타는 최근에 전라도 사투리에 근접한 무언가로 번역을 해보려고 시도 중이다. 우선 내가 경상도 사투리보다는 전라도 사투리가 훨씬 익숙해서 이 쪽은 조금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지 않나 싶다.

 

 

 

 

6 그 외에도 이런 단어들은 신경을 좀 쓰고 있다.

 

‘765프로는 대부분 ‘765프로덕션으로 번역한다. 사실 이건 좀 망설였던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돌 마스터에서는 10년 넘게나무코프로라는 단어 자체가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장 내에서 그냥 ‘765프로라고 쓰는 것 보다는 ‘765프로덕션이라고 적는 편이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지금은 그냥 ‘765프로덕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선전 사진이라는 단어가 있다. 보통선전이라는 단어는광고홍보로 번역하면 어색하지 않기 때문에 그 표현을 썼는데, 아무래도홍보 사진이나광고 사진이라는 표현 둘 다 어색했다. 밀리시타 내에서 나온선전 사진이라는 단어는 아이돌의 프로필에 걸리는 사진을 말했기 때문. 그래서 조금 고민한 끝에프로필 사진으로 번역하기로 했다. 나중에 아이돌 마스터 애니메이션을 볼 때 자막에서도프로필 사진이라는 단어를 쓴 것을 보고 좀 마음이 놓였다.

 

오시고토는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번역한다. 지금은스케줄두 가지 번역을 쓰는데, 가능하면 '스케줄'쪽으로 쓰려고 한다. ‘스케줄로 번역 하는건 밀리시타 한국 서버에서 배운 점이다. 경우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는 표현이 늘어서 마음에 든다.

 

오츠카레사마는 대부분수고하셨습니다로 번역 할 수 있지만, 오늘 처음 만나는 경우에도오츠카레라며 인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수고가 많네처럼 첫 만남에 어색하지 않은 표현을 고르거나, 아예 그냥안녕이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수록도 쓰지 않는 표현 중 하나이다. 일본어 번역 문장에서새 솔로 곡을 수록하고 왔다!’ 같은 표현을 종종 보곤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수록은 일본 방송 업계에서 주로 녹음이나 녹화 작업 등을 말할 때 쓰인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녹음혹은녹화로 바꿔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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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기준으로 블로그에는 766개의 글이 공개되어 있다. 순수 번역물의 양만 포함해도 762. 내가 생각해도 제법 많은 양의 포스팅을 올려 뒀다고 생각한다. 아마 개인 블로그 기준으로 밀리시타에 관해서는 가장 많은 양의 번역이 올라와 있지 않을까 싶다. 밀리시타 커뮤를 그냥 읽으면서 가기엔 심심하니까 번역을 하면서 가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한 블로그가 어느새 규모가 커졌다. 봐 주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취미의 일환이니만큼 시간을 쏟는 것도 아깝지 않았고, 지금도 마음 편히 즐겁게 번역을 하고 있다.

 

일본어를 전공한 것도 아닌 일개 아마추어일 뿐이지만 앞으로도 더 나은 번역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