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시타 게임 외 번역/2차 창작 번역

2차 창작 소설 번역 : 라푼젤의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면

라인슬링 2019. 12. 17. 11:24

◎ 읽기전에
-. 이 글은 2차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소설입니다.



라푼젤의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면

 

 

 

 

아침, 인기척 없는 극장 계단에는 내 발소리만이 울린다. 손은 굳었고, 차가웠다.

벌써 3월인데도 최고 기온은 연일 10도 전후, 밤새 차가워진 공간에는 아직까지 데워지지 않은 겨울의 밤이 남아있었다.

나는 새로 설치된 발판에 얕게 쌓여있는 먼지와 그 곳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며, 혼자서 계단을 올랐다. 관계자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무대 뒤편의 계단은 장식 없는 모양새라, 금속제 계단과 로퍼의 뒤꿈치가 닿을 때마다 발소리가 울렸다.

계단 위 플로어에는 조명장치의 두꺼운 선이 살아있는 듯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 곳에 오는 사람은 조명이나 음향 같은 무대 연출과 관련된 사람들이겠지.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그 층계참에는 작은 방이 3개 있었다. 딱히 기대하지 않고 손잡이를 쥐었지만 의외로 쉽게 돌아갔다.

방에는 빛을 들이기 위함인지 소방을 위함인지 창문이 있었고, 커튼도 없이 드러나있는 창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의 사용되지 않는건지, 내가 들어올 때 피어 올랐던 먼지가 아침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첫 번째 방에는 벽을 따라 서랍에 코드 따위가 난잡하게 늘어서있었다. 두 번째 방에는 창문이 반쯤 가려질 정도로 종이 박스가 높이 쌓여있었다.

세 번째 방에 들어갔을 때, 지금까지 본 두 방과는 다른 인상을 받았다. 빛이 부드러워 보이고, 어쩐지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무대 미술과 관련된 사람이 사용했던 건지, 제도용으로 사용되는 도구나 이젤이 놓여있었다. 서랍에는 빈 캔을 몸통으로 삼은 로봇같은 공작물이 놓여있다.

나는 이 다락방에 기묘한 애착이 느껴졌다.

이 곳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숲 속 마녀의 집처럼, 작은 우주선 콕핏처럼, 연금술사의 실험실처럼, 신비로운 향기가 났다. 이 부실은 대체 누가 쓰고 있을까?

창문을 보니, 부실의 인상이 달랐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른 방 창문이 깨끗했던 것과 다르게, 이 방의 창문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 이 방에는 어제 밤에 누군가 있었다는 것이다.

 

 

-

 

 

…… 나나오 유리코가 아이돌 후보생으로서 사무소에 소속된건 다른 멤버들보다 수개월 후였다.

이력서를 보내 지원을 하고 소식이 없어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무 절차가 꼬여서 연락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이 나이대 여자아이들에게 있어서 혼자서만 수 개월 늦게 무리에 합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처럼 낯을 가리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내가 합류했던건 마침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서 준비하느라 다들 바쁘던 시기였다.

저마다 듀엣 상대가 이미 결정되어있었고, 공연을 대비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방해를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그 틈에 끼려하지는 않았다. ……아니, 방해하지 않겠다는건 구실이고, 도망쳐 나온 것이다.

수 개월이나 차이가 나는 동기들은 다들 친절히 대해줬고, 소극적인 나에게도 말을 걸어주고 그 무리에 합류하는 것을 반겨줬다. 하지만 나는 그 무리에 들어가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레슨 전후로 혼자서 사람이 없는 극장 내부를 탐색하고 다니게 된 것이다.

반지하 통로, 대기실로 이어지는 긴 복도, 극장 뒤편에 놓여있는 큰 셔터…… 전부다 내 모험심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다만, 무대에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었다.

객석에서도 막에 가려져 무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대를 본 것은 한 번 뿐…… 정식으로 소속이 결정되기 직전에 극장을 견학하러 왔을 때이다. 그 때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무대 위에 서서 본 스테이지는 마치 날아오르는 거대한 그림책과 같았다. 항상 말로만 떠올렸던 반짝이는 공상이 말 뿐만이 아니라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온 몸이 근질거려서 춤을 추고 싶어졌다. 노래하고, 소리지르고, 달리고 싶었다. 황홀한 기분으로 통통 뛰며 무대 옆으로 뛰어간 나는 무대에서 빠져 나온 두꺼운 코드에 발이 걸려 요란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홀에 울린 소리는 지금도 귓속에 남아있다.

그 후, 소속이 결정되고는 한 번도 무대를 본 적이 없다.

도망치고 있던 사이에 나와 무대 사이의 거리는 어느 샌가 제법 멀어지고 말았다.

 

 

-

 

 

저녁, 그 날 레슨이 끝난 후 나는 귀가 길에 오르는 그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나는 계단을 올라 세 번째 방 문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노크를 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참에는 이미 문을 연 뒤였다.

방 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소녀가 이 쪽을 쳐다보았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저녁놀이 역광이 되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폭신폭신해 보이는 옅은 색 머리칼이 파도치고, 삐져나온 머리가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불꽃놀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눈 앞의 광경이 너무나 환상적인 나머지, 꿈 속 세계에 빠지고 만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문고리를 잡은 채 굳어있자, 소녀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왔다.

“……누구세요?”

겁먹은 듯, 거절의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저기, 죄송합니다…… 여긴 당신 방인가요?”

소녀는 약간 주저하고는, 눈을 피하며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저는 신인인 나나오 유리코라고 해요.”

신인?”

. 지난 달 20일부터 소속되었어요.”

“……그렇군요.”

그녀는 일어서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키는 나랑 비슷한 정도인가. 그녀는 문 옆의 스위치를 눌러 방에 불을 켰다. 내 근처로 오려는게 목적이 아니었나보다.

저기

말을 걸자 그제야 그녀는 얼굴을 보였다.

호기심이 왕성해 보이는 큰 눈동자와 부드러워 보이는 뺨, 까다로워 보이는 쌍꺼풀이 인상적이었다. 꽤 어려보이는데, 연하인가.

왜 그러세요?”

“……당신은요?”

로코는 로코에요.”

로코는로코’?

“……?” 하고 되묻자, 소녀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손을 얹고,

로코, 에요. 그게 이름이에요.”

“……로코.”

‘~를 붙일까 하다가 연하로 보여 그냥 그렇게 불렀다. 그녀는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로코를 모르시나요?”

?”

어떤 의미였을까.

“…….” 하고 대답하자, “그렇군요.” 라고 대답하며 그녀는 다시 나에게 등을 보이며 방 중앙으로 돌아갔다.

보아하니 로코는 스케치북 같은 것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미 그녀의 관심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어쩐지 모르게 망설였다가, 조용히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문 밖에서 나는 기묘한 감정을 품었다.

……내가 그녀를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 기분 탓인지 그녀의 표정이 누그러지는 듯이 보였던 건 왜일까?

 

 

-

 

 

그 후로 사흘이 지났다.

레슨 스케줄이 비어서 나는 이전처럼 집, 학교, 도서관, 서점을 돌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교실 창가에 평소대로 걸터앉아 아직 2월인 것처럼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대 뒤편 작은 방의 로코라는 이름의 소녀와 만났던 것이 사실인지 애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었을까. 아니면 공상이었던 걸까……

레슨이 끝난 날 나는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반지하 통로를 지나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교복 위에 걸쳐 입은 더블코트의 단추가 계단 난간에 부딪히며 예리한 금속음을 냈다. 나는 세 번째 문에 노크를 했고, 그 문을 열었다.

로코는 역시 그 곳에 있었다.

강하면서도 겁먹은듯한 눈빛으로, 환영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아닌 채 나를 맞이했다.

“……안녕.”

유리코.”

기억해줬구나.

.”

뭐 하러 온 거에요?”

그게……”

갑자기 묻자 말문이 막혔다.

“……로코야말로 여기서 뭘 하는거야?”

크리에이션이에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는듯한 말투로 그녀는 손에 쥔 붓으로 나를 가리켰다.

로코는 그걸 위해 여기 있는거에요.”

그걸 위해?”

미술 스태프라는 뜻인가? 그녀의 눈 앞에 있는 캔버스는 극장에서 쓸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있는걸까.

그걸 그리는게 일이야?”

그녀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유리코랑은 관계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말 하며 그녀는 등을 돌려 크리에이션이라 말한 작업으로 복귀했다.

……어떻게 할까.

지금 나가면 옷을 다 갈아입은 다른 멤버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디 다녀왔는지 물을지도 모른다. 왠지 그건 싫었다.

이 방을 나가라는 말을 듣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이 곳에 남기로 했다.

방 구석에 있던 나무 상자를 끌어와서 손수건을 먼지떨이 대신 흔들어 먼지를 털어내고 나는 그 곳에 앉았다. 로코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쪽을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가방에서 문고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에서는 청년 탐정이 만났다가 헤어졌다가 하는 남녀에게 안달복달하며 살인 사건의 수수께끼를 뒤쫓고 있었다.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지만, 헐리우드의 정보를 모아주는 미녀가 있어서 청년 탐정은 사건의 진상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었다.

내 뱃속에서 소리가 울려 현실세계로 돌아오고 말았다.

손목시계를 보고서야 내가 한 시간 이상 책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고픔을 깨닫는 동시에 방이 추워졌다는 사실, 창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로코는 한 시간 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 작업에 몰두해있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어깨부터 망토 같은 모포를 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까지 몰두하게 만드는 걸까. 그녀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 걸까. 방금 전 모습을 보면 질문을 하더라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한 번 더, 배 속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문고본을 가방에 넣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방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극장의 앞, 교차로 건너편에는 편의점이 있다. 나는 유혹에 못 이겨 그 곳으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배고픔에 어쩔 수 없이 고기만두를 샀다.

봉투를 들고 가게를 나설 때, 로코가 생각났다.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을까. 만두를 나눠주고싶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극장에서 일이 끝나면 무대 뒤편 방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같은 방에는 항상 로코가 있었다. 거의 대화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동정심이 들었다.

 

 

-

 

 

~리코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방을 나오던 나는 갑자기 어깨를 붙잡혔다.

메구미 언니.”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씩 웃었다. 자연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고는 천진난만하게 말을 걸어왔다.

집합이 끝나자마자 매번 사라지는데, 어디로 가는거야?”

“…….”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아무 잘못도 한 적 없는데. 아무 것도 책망한게 아닌데.

메구미 언니는 말문이 막힌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갸웃하곤 대답을 기다렸다. 그 친절함에 어쩐지 마음이 찔렸다.

“……딱히 어딜 가는건 아닌데요……”

정말? 그럼 다음에 말야, 끝나면 노래방 가자!”

또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

메구미.”

또 한 사람의 선배가 메구미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코토하.”

메구미는 너무 밀어붙이기만 한다니까. 유리코가 놀랐잖아.”

코토하 언니가 그렇게 말 하며 나를 안심 시키려는 듯 미소 지어주었다. 보고만 있어도 신뢰감이 들고 안심되는 표정이었다.

“……저기.”

나는 그 표정에 이끌리듯 질문을 했다.

로코라는 여자아이, 알고 계세요?”

, 그러고보니 유리코는 아직 만난 적 없지?”

알고 있다! 메구미 언니는 로코를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알지, 로코도 우리와 같은 극장의 동료야.”

역시 극장 스태프였구나.

미술 스태프인가요?”

메구미 언니는 순간 아이고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세 원래대로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아까처럼 웃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니…… 아이돌 후보생이야.”

, 하는 말이 새어나가고 말았다.

“……그럼 왜 오지 않는거에요?”

메구미~”

숨길 수만은 없잖아. 게다가 유리코도 우리랑 같은 동료니까.”

코토하 언니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대신 긴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꺼림직한 표정을 하며 메구미 언니를 바라보았다.

로코는…… 근신 중이야.”

근신……?”

메구미.”

메구미 언니는 말을 끊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코토하 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유리코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게다가 숨겨봤자 금세 알게 될거야. 극장에선 모두 다 알고 있는걸.”

그렇다고 해도 그건 우리가 말 할게 아니야. 프로듀서님의 판단하시고 프로듀서님께 듣는게 맞다고 봐.”

나는 동요했다.

로코는 나와 같은 아이돌 후보생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연습에도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 작은 방에만 틀어박혀있다. 메구미 언니는 로코가 근신 중이라고 했다. 왜일까?

내 심장이 격하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나를 프로듀서님에게 데려가는 동안 내 시야가 계속 흔들렸다.

프로듀서님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두 번째였다.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책상 위에는 서류나 자료가 쌓여있었고, 구석에는 커피 자국이 남은 종이컵이 쌓여있었다.

코토하 언니가 사정을 설명하자 프로듀서님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구나. 알겠어.”

메구미 언니와 코토하 언니가 나갔다.

프로듀서님은 바퀴 달린 작은 의자를 끌어와 나에게 권했다. 치마에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앉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 유리코가 로코에게 편견을 가질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피하고 있었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코는 아트에 관심이 많은 아이고,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계속 찾고 있었어. 독특한 감성을 갖고 있고 그건 아이돌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이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이야기의 요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로코는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말았어. 나는 근신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본인이 스스로 말을 꺼내 그런 모양새가 된거야.”

프로듀서님은 괴로운 듯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정식으로 소속되기 전의 일이다.

스탭 분이 홀에 갔을 때 무대 위 세팅이 부서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프로듀서님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라고 표현했다.

당연히 원인을 추궁 할 수 밖에 없었다.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는 당시 소속된 아이돌 전원을 모아 질문했다.

무대에 마음대로 손을 대 엉망진창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누가 뭐든지 아는게 있으면 알려줬으면 한다.”

그러자 난처해하며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멤버들 사이에서 혼자 로코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을 들었다.

로코, 뭐 아는거 있어?”

“……로코가 저질렀어요.”

그 때 눈동자가 새빨갰다고 한다.

 

그럴수가……”

“……나도 믿겨지지 않아. 아이돌이 자기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다니. ……하지만 로코가 스스로 인정했어. 그리고 스스로 근신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지. 로코에겐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고 말해뒀어. 사전에 의논만 하면 로코가 무대에서 하고 싶은 표현도 확실히 검토해주겠다고 말야.”

말을 거듭할 때마다 프로듀서님의 어조는 어쩐지 변명을 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졌다.

호흡을 하기 괴로웠다. 빨리 방을 나가 밖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유리코는 로코를 만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걔는 아까도 말 했듯이……”

저기.”

나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말씀하시는 도중에 죄송해요. ……저 이제 그만 돌아가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등을 돌려 옷걸이에서 코트를 들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손에 쥔 채 극장 밖으로 나왔다.

왜 내가 로코를 모른다고 했을 때 그녀의 긴장이 풀린건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를 비난 당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로코가 그런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왜일까? 그녀와는 거의 이야기도 나눈 적이 없었는데. 대체 내가 로코에 대해 뭘 알고 있다는 걸까. 그녀 자신이 스스로 했다고 인정하고 스스로 근신하겠다 말했는데도.

잘 모르겠다. 혼란스러웠다.

손이 떨려서 개찰구 앞에서 정기권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뒤에 서있던 한 회사원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겨자색 정기권을 집어들고 개찰구에 넣고, 전철이 오고 있는 플랫폼에 섰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나는 그제야 아직도 코트를 손에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 다음주 화요일은 정말로 추웠다. 일기예보는 2월 상순에 해당하는 기온이라고 말 하며 겨울 코트를 입고 교차로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줬다.

나는 레슨 후 무대 뒤편 계단을 올랐다. 그것은 지난 2주간 계속 반복해온 습관이었다. 계단 위, 세 번째 방에는 평소처럼 로코가 있었고 평소처럼 말없이 나를 맞이했다.

나는 평소처럼 나무 상자에 앉아 문고본 책을 펼쳤다. 천천히 시간이 흘렀다.

밤이 너무 추워서 무릎 담요를 하고 있어도 발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로코는 큰 모포를 두르고 묵묵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방 구석에는 하나 밖에 없는 콘센트 플러그를 사용해 전기 난로를 켜두었다. 그녀는 가끔 그 곳으로 가 손발을 데웠다.

자주 보는 문고 커버로 덮인 SF 소설 속에서는 소년과 소녀의 한 여름의 러브스토리가 갑자기 기나긴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손발을 데운 로코가 전기 나로 앞을 떠나 작업으로 복귀한 후, 나도 똑같이 손발을 데웠다. 작업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봐도 특별히 신경을 쓰는 기색은 없었고, 나도 책을 한 챕터씩 읽을때마다 손을 데우러 오게 되었다.

내 손 끝, 종이 위에서는 빙하기에 접어들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작은 온기를 바라고 있었다. 특권을 가진 시민만이 셸터 속에서 빙하기를 견딜 수 있었고, 셸터 속은 디스토피아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계급이 다른 소년과 소녀는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책을 닫자, 큰 한숨을 쉬었다.

다시 손을 데우러 일어났을 때, 난로 앞에는 소녀가 모포를 덮고 온기를 쬐고 있었다.

그녀는 조그맣게 고개를 들고 고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놀랐지만 나는 그녀를 같이 바라보았다. 로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로코의 옆에 앉았다.

잠시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옆 모습을 바라보자 긴 머리카락이 조그맣게 떨렸다. 어렴풋이 물들어있는 뺨, 굳게 닫혀있는 입술, 작고 고집스러운 코가 보였다.

갑자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로코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모포를 펼쳤다. 내가 자리를 옮겨 다가가자 그녀와 어깨가 닿았다. 나는 로코에게서 모포 끝을 받아서 내 어깨에 걸쳤다.

전기 난로에서 나는 지직대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없었다. 우리는 말 없이 나란히 작은 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작은 무대 뒤 방을 제외하면 온 세상이 얼어붙어있었다. 시간이 멈추고 우리 두 사람의 심장박동만이 남아있었다.

……아니다.

그게 아냐.

멈춰있는건 이 방이다. 우리 두 사람이다.

세상이 움직이고 있고, 우리 두 사람만이 멈춰있었다.

어떻게 하는 나의 시간이, 그녀의 시간이 다시 움직일까?

“……로코.”

과감하게 꺼낸 말은 생각보다 쉰 목소리로 나왔다.

.”

작은 입술에서 나온 대답 또한 쉰 목소리였다.

있잖아…… .”

머리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시간을 움직이게 할 방법. 한 발 나아갈 방법을.

이 극장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걸 말로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로코랑 같이 무대에 오르고 싶어.”

부드러운 머리칼이 움직이며 내 뺨을 쓰다듬고, 내 머리에 닿았다. 그녀는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로코에 대해서 들었군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코에 대해서는 프로듀서님께 들었어. 하지만 나는 로코와 함께 무대에 오르고 싶어.”

“……그건 불가능해요.”

?”

다들 로코를 받아들여주지 않을테니까요.”

그렇지 않아. 다들 용서 해 줄텐데……”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그녀는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나는 놀라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눈동자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로코가 한 일을 없었던 일로 하는건 로코에겐 아무 의미도 없어요. 용서 해 주는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로코는 용서를 받고 싶은게 아니에요.”

말투가 떨리고 있었다.

인정받지 못하면 로코가 있을 필요가 없어요!”

외치는 것과 동시에 눈물이 흘러 넘쳤다.

그녀는 표정을 새빨갛게 하고 울고 있었다. 눈물로 인해 금세 뿌옇게 변했다. 이윽고 내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었다면 이럴 때 그녀를 구해줄 수 있겠지. 그녀를 지켜줄 수 있겠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로코.”

나는 그녀를 껴안았다. 감싸 안듯이, 그리고 매달리듯이.

미안해…… 나는 아직 로코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이것만은 알 수 있어.”

내 가슴 속에서 로코의 작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로코가 좋아.”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겁쟁이고 낯을 가리고…… 무대로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망쳐왔으니까…… 하지만 로코는 그런 나에게 있을 곳을 줬으니까…… 그러니까 언젠가 나도 로코와 서로 알아가고, 전부 받아들여주고 싶어. 그러니까 로코와 함께 걸어나가고 싶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안될까?”

일 초, 이 초…… 오 초…… 십 초를 지났을 무렵, 로코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눈도 뺨도 입술도 새빨갛고 뺨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정말로 사랑스러웠다.

로코는……”

조그맣게 고개를 젓고,

말로는…… 뭐라고 할지 잘 모르겠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미안해요.” 라고 말하며 그녀는 일어섰다.

로코의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에요. ……미안하지만 오늘 밤은…… 혼자 있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말 하며 등을 돌리고 다시 캔버스를 향해 가버렸다.

나는 짐을 챙겨 방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뺨이 추위로 인해 죄어오듯 아팠다. 나는 역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목이 건조했다. 침을 삼키면 목이 아팠다. 코가 꽉 막히고 머리가 멍했다.

나는 감기에 걸렸다.

열이 조금 있어서 학교도 쉬기로 했고, 오전에는 계속 잠을 잤다. 오후에는 가만히 일어나 침대에서 책을 읽었다.

정오를 조금 지났을 무렵 극장에도 연락을 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프로듀서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프로듀서님은 극장 일은 잊고 푹 쉬어 두라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혹시 몸 상태가 좋아지면 극장을 보러 와 달라는 말도 써있었다. 드디어 공연 날이 가까워지니 이번 주말에 실제로 무대를 써서 멤버들이 연습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대는 원상복귀 되었다고 했다.

나는 프로듀서님의 답장을 읽고 아무 답장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는 처음 극장에 방문했을 때 본 무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그 무대는 선명히 기억이 났다.

왜 내가 정식으로 소속되기 전에는 무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는데 소속된 후에는 금지당했는지 갑자기 알 것 같았다. 로코의 일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사건은 내가 무대를 보고 나서 정식으로 소속되기 전까지 벌어졌다는 소리인데…… 나는 반쯤 졸며 생각했다.

그 후에도 뭔가 생각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가족들은 이미 저녁식사를 마친 뒤였고, 내 식사만이 랩에 싸여 식탁 위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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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는 하루만에 나았고 학교는 하루밖에 쉬지 못했다.

아직 격한 운동은 피하려고 했지만 우선 프로듀서님께 인사라도 할 겸 나는 극장으로 향했다.

프로듀서님은 내가 다 나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레슨은 체력이 충분히 회복된 후에 해도 좋다고 이야기하셨다.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맞다.” 프로듀서님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제 무대를 볼 수 있어. 괜찮으면 보고 갈래?”

정말인가요!”

프로듀서님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기뻐요! 제가 처음 극장에 왔을 때 본 무대, 그 감동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그 때 무대를 있는 그대로 복원했어.”

감사합니다!”

나는 뛰쳐나가듯 홀을 향했다.

무대는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큰 문을 열고 홀로 들어갔다.

나는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의 무대를 마음 속으로 그렸다.

하지만 내 시야에 비친 무대는 그것과는 달랐다.

프로듀서님은 있는 그대로라고 말 했는데,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멋진 무대이긴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평범해 보였다. 나는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잊혀지지가 않아서 기억을 미화시키고 있는걸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확실하게 호화찬란한 무대를 봤다. 하지만 그건 지금은 없다.

그럼 내가 본건 뭐였을까?

……답은 갑자기 생각났다.

마치 봄 태풍에 실려온 천둥 소리처럼 한가지 생각이 번쩍였다. 왜 로코가 손을 들었는지, 왜 무대가 다른지,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다, 나 뿐이 아니다.

로코도, 극장의 다른 사람들도 모든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 착각이었다.

나는 프로듀서님의 방으로 뛰쳐 들어가, 놀라 커피를 쏟은 그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상관치 않고 외쳤다.

무대가 부서졌던 사건이 벌어진 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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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대 뒤편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기세 좋게 뛰어 올라 로퍼가 한 쪽이 벗겨질 뻔 했던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끄러운 발 소리가 홀에 잠기듯 사라졌다. 먼지를 일으키며 무대 뒤 복도를 달려 로코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로코!”

그녀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유리코, 갑자기……”

나와 무대에 오르자.”

그녀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로코는……”

로코가 아냐!”

나는 외쳤다.

다들 착각하고 있는거야! 프로듀서님도, 다른 사람들도, 로코도!”

로코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 양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로코가 무대를 장식한 뒤에 다른 원인으로 인해서 무대가 부서진거야. 프로듀서님은 망가진 무대를 보고 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한건데, 로코는 무대가 부서졌다는 사실을 모른채 장식을 한 것에 화가 났다고 착각을 한거야.”

얼굴 절반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뜨겁게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로코가 자기 이름을 대니까 프로듀서님은 로코가 무대를 부쉈다고 착각한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로코는 잠시 이야기를 곱씹어보는 듯, 몇 번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나는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는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리코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나는 그 날 로코가 장식한 무대를 봤으니까.”

프로듀서님이 알려준 사건이 일어난 날짜는 내가 처음 극장에 왔던 날짜와 같았다.

그 날 극장에는 세가지 종류의 무대가 있었다.

우선 이번에 있는 그대로재현한 내 기억과는 다른 무대.

다음에, 내가 본 그림책에서 튀어나온듯한 무대.

그리고 스태프가 발견하고 프로듀서님이 목격했던 엉망진창이 된무대.

그 세 가지는 시간적으로 이 순서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호화찬란했던 무대를 일부러 평범하게 바꿀리는 없고, 부서진 무대가 아무도 모르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당초 예정되어있었던 무대와 부서진 무대 사이에 나 혼자만이 봤던 무대가 있었다. 누가 그 무대를 만들었을까. 로코밖에 없다. ‘무대에 손을 댄 사람에 대해 물었을 때 손을 든 것은 로코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이 로코에게 전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순서를 정리하며 설명했다. 나는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걸로 그녀의 무죄가 증명된다. 로코는 극장에 복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이해해감에 따라 나는 불안해졌다. ……왜 그녀는 자기 무죄가 증명되려 하고 있는데 슬퍼하는걸까. 왜 그녀는 울고 있을까?

로코의 턱에 고여있던 눈물이 떨어져 내 손에 닿았다.

……그렇구나.

그녀는 무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마음 속에서 자기 장식이 멋지다고 믿고 있었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무대를 부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을 것이다. 로코는 자기 장식이 인정받을 수 있을지 정말로 불안했던 것이다.

함께 무대에 오르자고 말했던 밤, 그녀는 인정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인정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고, 그녀는 자신의 표현이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마음 속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이제 무섭지 않았다. 용기가 샘솟았다.

“……난 말야. 처음 극장에 와서 우연히 로코가 장식해둔 무대를 보고…… 마음 속 깊이 감동했어! 정말로 꿈만 같은 무대였어, 이런 곳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겨우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눈물로 뿌옇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나는 로코와 무대에 오르고 싶어. 로코의 무대에 서고 싶어!”

그녀는 내 가슴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가 평상시 붓을 놀리던 캔버스에 시선이 닿았다. 평소 작은 등에 가려져있던 그 그림에는 라푼젤의 날개를 달고 빛 무리를 향해 날아오르는 천사가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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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이 끝나고, 큰 환호성과 박수가 들려온다.

메구미 언니와 코토하 언니가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객석을 보고 토크를 시작했다.

이 토크가 끝나면 우리가 나설 차례다.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로코와 함께 무대 뒤 방을 나온 이후의 날들이 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레슨은 힘들었지만 그녀의 미소에 힘을 얻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첫 무대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니까.

유리코.”

로코가 속삭였다.

너버스 한가요?”

“……, 엄청.”

그러자 그녀가 내 손을 살그머니 잡았다.

노 프라블럼이에요! 로코 스테이지는 퍼펙트하니까요!”

“……로코, 손 떨리는데.”

그녀는 뺨을 불룩 부풀리고는,

익사이팅…… …… 흥분되는 것 뿐이에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로코가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다음은 우리 새로운 동료야!”

어서와요!”

무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 빛을 향해 걸어나갔다.